[책] 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 [책]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5점)[소설가 '김별아'의 서가] 책장에 담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그리스 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마련해 놓았었다는 묘비명이 오버랩 되는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 늙은 사이렌을 사랑하는 언제나 젊은 조르바의 야성이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를 가졌던 이윤기 선생의 번역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진다.
-
- [책]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4점)[책] 책장에 담았습니다.
이성이 풍만하여 많은 사람들이 히스테리 환자가 되어 가는 현실 풍토 속에 감성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책 ㅡ나"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뻐가 희도록 일하는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것. "
-
- [책]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3점)[요즘 읽는 책] 책장에 담았습니다.
요즘 읽고있는 책 아직까진 초반이라 거칠고 낯설기만한.. 최근 읽었던 "책에 미친 청춘" 에서 추천된 책들 중 한권이라 읽기 시작했는데 왠지 낯간지러운 ㅎㅎ
- yang810123
- 1년 전
-
- [책]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4점)[완독] 책장에 담았습니다.
언어의 감금인가, 메타포의 광란인가, 잠언의 집약인가, 철학의 실체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하나의 시詩인가. 읽긴 했지만 어떻게 읽을 수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만든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렇다. 이것이 카잔차키스가 본문에서 말한 <인도에서, 밤이 깔리고 나서 들리는 나지막한 소리, 먼 곳에서 육식 동물이 하품하는 듯한 느리고 야성적인 노래>, 즉 <호랑이의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나와 조르바>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의 <제제와 뽀르뚜가>, 삶에서의 <아버지와 아들>로 대치될 수 있으며, <나>와 <조르바>는 문답으로써 서로를 갈구한다.
<나>에게 <조르바>는 네살바기 알카에게서 본 붓다의 모습인가 ㅡ 어차피 카잔차키스의 의도에 따르면 신神은 인간이 창조한 삶의 도약에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성자聖子 같고 경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조르바>는 바로 우리이며, <조르바가 다칠까 노심초사하고 그가 떠날까 안절부절 못하는 나>도 역시 우리의 군상이다. 그리고 <나>는 <조르바>에게 되새김질 하듯 늘상 묻고 또 묻는다. 조르바의 말처럼 <나>는 걸핏하면 <그래서>, <왜>라고 묻는 거다. 그러나 <나>는 그리 할 수밖에 없다. 왜? <나>와 <조르바>가 동일시된다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이란 요새에서 우리의 역을 연기한다. 사면을 내려가며 걷어찬 돌멩이가 굴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봤어요?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라고. 조르바를 만난(집어든) 순간부터 (우리의) 인생의 껍질은 이미 부화를 알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조르바는 터키인이면서 그리스인이었고, 성자임과 동시에 광부였으며, 붓다이면서도 미치광이였고, <나>였으며 <조르바>였다. <나>는 <조르바>를 신기해하다가 동질감을 느끼고, 동경을 지나 그의 말을 되풀이하며, 나중에는 <섬기게> 된다. 시장의 떠벌이든 무대 위의 바람잡이든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인간 존재를 극상으로 끌어올리기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으며 그것을 하나의 싸움터로 인식하고서 탐험하고 의미를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조르바는 자유를 차지하려 투쟁하고, 영혼을 심화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인생의 두려움이 주는 협박에 주저 없이 발을 들여놓는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이란 도약하고 충동적이며, 야생의 날것이어야 하고 역치값을 넘어 끝장을 보아야만 비로소 진실된 것이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잉걸불을 후후 불어 그것을 다 태우고 나서야만 편히 잠드는, 꼬장꼬장한 악다구니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p.s 『그리스인 조르바』를 내려놓으며 아쉬운 마음을, 본문 77페이지의 <나>의 대사로 대신할까 한다. 「이야기하세요, 조르바. 뭐든 이야기해요!」- aaaaiiight
- 1년 전
-
- [책]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5점)[심장이뛰어] 책장에 담았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책이 아니라 땀으로 세상에 맞부딪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유쾌한 삶!
-
- [책]그리스인 조르바 (양장)
- (4점)[문학, 기타~] 책장에 담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다들 알거라 생각됨..
자유로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떠드는자 읽어보아야할 책.
즐겁고 슬픈 책.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개역판에 부치는 말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 때 쓴 글을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했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했고,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카잔차키스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는 이듬해부터 집필을 시작한 [붓다]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로 구체화된다. 이후에도 특파원 자격으로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카프카스 등지를 여행하며 다수의 소설과 희곡, 여행기, 논문, 번역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의 하나인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했다. 카잔차키스는 1955년 앙티브에 정착했다가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 온 뒤 얼마 안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두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